2018년 7월22일 박종길목사 컬럼
최고관리자
2018.07.2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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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당회(堂會, consistory).
당회는 한자로 ‘堂會’(집 당, 모일 회)라고 표기합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집안 모임’입니다. 그러나 글자만 봐서는 당회가 도대체 어떤 모임인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당회는 영어로 컨시스토리(consistory)로, 라틴어 ‘con’과 ‘ststere’의 합성어입니다. ‘함께
서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함께 모여 의논하는 모든 모임을 컨시스토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이와 같은 컨시스토리
는 고위 성직자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반 성도는 교회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 교회는
이것을 장로들의 모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로써 한 사람이 아니라 장로들의 모임을 통해 다스리는 교회 정치가 확립되었습니다. 개교회는 당회, 지역
교회는 노회, 전국 교회는 총회라고 부르는데, 명칭과 상관없이 그 모임의 본질은 컨시스토리, 즉 ‘장로들이 모임’입니다.
장로들의 모임은 디모데전서 4:14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바울 사도의 제자였던 디모데는 사도 한 사람이 아니라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아
직분을 수행합니다. 회의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개혁 교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그냥 목사가 혼자 알아서 교회 일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게 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시대에 회의는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제도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를 취하든 성경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개혁 교회가 종교개혁을 통해 당회를
가장 성경적인 제도로 받아들인 이상, 회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의는 한 사람의 독단을 막고 교회의 부정을 막으며 교회 행정
을 훨씬 투명하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나아가 삼위 하나님의 협치(協治)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교회 기관이기도 합니다.
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모임으로서 한 교회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고, 교회의 각 기관을 사랑으로 감독하는 여러 일을 합니다. 문제는 근래 들
어 이런 중요한 일들을 당회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주로 교역자 회의에서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당회가 교회의 비본질적이고
주변적인 문제를 다루는 명목상 이사회 같은 곳이 되어 버린 교회가 많습니다. 당회 자체가 바른 교회 정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당회원들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당회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당회는 회의 기관이기 때문에 당회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회의를 잘하는 것입니다. 회의는 한
사람의 의견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더 좋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회의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당회원을 선출할 때
꼭 확인해야 할 자질이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딛1:7). 이 자질은 목장이나 공동체, 교사 모임 등을 통해 검증할 수 있습니다.
당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서로 사랑합시다’, ‘기도합시다’는 상투적
인 말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당회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누구를 당회원으로 선출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이 통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당회원들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성
도들은 이러한 성경적 당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당회는 한자로 ‘堂會’(집 당, 모일 회)라고 표기합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집안 모임’입니다. 그러나 글자만 봐서는 당회가 도대체 어떤 모임인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적절한 번역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당회는 영어로 컨시스토리(consistory)로, 라틴어 ‘con’과 ‘ststere’의 합성어입니다. ‘함께
서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함께 모여 의논하는 모든 모임을 컨시스토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이와 같은 컨시스토리
는 고위 성직자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반 성도는 교회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 교회는
이것을 장로들의 모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로써 한 사람이 아니라 장로들의 모임을 통해 다스리는 교회 정치가 확립되었습니다. 개교회는 당회, 지역
교회는 노회, 전국 교회는 총회라고 부르는데, 명칭과 상관없이 그 모임의 본질은 컨시스토리, 즉 ‘장로들이 모임’입니다.
장로들의 모임은 디모데전서 4:14에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바울 사도의 제자였던 디모데는 사도 한 사람이 아니라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아
직분을 수행합니다. 회의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개혁 교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그냥 목사가 혼자 알아서 교회 일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게 여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시대에 회의는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제도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를 취하든 성경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개혁 교회가 종교개혁을 통해 당회를
가장 성경적인 제도로 받아들인 이상, 회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의는 한 사람의 독단을 막고 교회의 부정을 막으며 교회 행정
을 훨씬 투명하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나아가 삼위 하나님의 협치(協治)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교회 기관이기도 합니다.
당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모임으로서 한 교회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고, 교회의 각 기관을 사랑으로 감독하는 여러 일을 합니다. 문제는 근래 들
어 이런 중요한 일들을 당회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주로 교역자 회의에서 다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당회가 교회의 비본질적이고
주변적인 문제를 다루는 명목상 이사회 같은 곳이 되어 버린 교회가 많습니다. 당회 자체가 바른 교회 정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당회원들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당회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당회는 회의 기관이기 때문에 당회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회의를 잘하는 것입니다. 회의는 한
사람의 의견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더 좋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회의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당회원을 선출할 때
꼭 확인해야 할 자질이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딛1:7). 이 자질은 목장이나 공동체, 교사 모임 등을 통해 검증할 수 있습니다.
당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서로 사랑합시다’, ‘기도합시다’는 상투적
인 말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당회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누구를 당회원으로 선출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이 통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당회원들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성
도들은 이러한 성경적 당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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